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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02월 22일(수) 방송분 '공동체와 성가대에 관한 지침','나주 무학당'
첨부파일1 나주무학당.jpg(197081kb)
첨부파일2 나주성당_순교자기념경당_DSC08066(0).JPG(840032kb)

광주가톨릭평화방송 | 2017/02/22 14:31






02월 22일 (수) 방송분입니다.




***** 프란치스코 신부와 함께하는 전례 이야기
- 용봉동 성당 조영대 신부
- 미사 전례성가3- 공동체와 성가대에 관한 지침
- 지침들이 반복하여 강조하는 교우 공동체와 성가대에 관한 내용을 살펴보고자 한다.
1)‘교우 공동체는 성가를 불러야 한다.’는 것이 지침들의 한결같은 원칙이다.
이 원칙은 직접 또는 간접으로 거듭 이렇게 강조되고 있다... (중략)
2) 그렇다고 성가대가 더 이상 필요 없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공의회의 쇄신 규정에 따라 성가대의 사명은 더 중요해지고 비중도 높아졌다.
성가대는 성가대 고유 부분을 다양하고도 올바르게 노래하도록 힘써야 한다...(중략)



***** 성지에서 찾은 주님
- 소록도 성당 김연준 신부
- 단순한 성지소개가 아닌 성지가 가지고 있는 아픔과
그 안에서 생활한 분들이 주님의 사랑을 느낀 이야기를 전해들어봅니다.
- 나주 무학당 이야기
- 무학당의 확실한 위치는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현재 나주 초등학교 안의 한쪽 화단이 박해 당시 사형 터로 쓰였던 무학당의 원래 터였다고 전해질 뿐이다.
이곳에서 치명한 세 분 순교자 : 강영원 바오로- 천주학을 버리라는 강요 속에서도 굳게 신앙을 지키다가
마침내 1872년 3월 9일 백지사형(白紙死刑)으로 치명했다.
물에 적신 얇은 창호지를 여러 겹 얼굴에 발라 질식케 하는 백지사형은
그 사형 방법이 간편한 반면에 극심한 고통을 주기 때문에
박해 시대에 여러 곳에서 사용되던 사형 방법이었다.
유치성 안드레아- 강영원과는 달리 쏟아지는 돌더미 속에서 머리가 깨지고
뼈와 살이 으스러지는 혹독한 고통을 겪어야 했다.
유문보 바오로- 두 치명자보다 먼저 순교한 것은 확실하며,
대략 2월 12일에서 3월 9일 사이에 나주에서 옥사했다고 본다....

작성일 : 2017-02-22 14:31:00     최종수정일 : 0000-00-0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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