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신년대담] 문창우 제주교구장, “젊은이들과 함께 교회가 다시 젊어지는 여정되길”
김리원
| 2026/01/06 10:01
문창우 제주교구장은 cpbc광주가톨릭평화방송과 진행한 '2026신년대담'에서 "교회 안에서 젊은이들이 세상과도 더욱 더 화해하고 또 그런 젊음의 여정들을 동반해가는 여정 안에서 교회가 더 단순해지고, 인간적이고 복음의 어떤 본래의 힘을 다시 발견하는 그런 자리가 되지 않겠는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프로그램명: 종교프로그램 '향기로운 오후, 주님과 함께'
▣방송시간: 2026년 1월 5일(월), 14:05~17:55분(50분)
▣출연자: 제주교구장 문창우 주교
▣제작/진행: 제작 조미영 차장, 진행 강하은 아나운서
♦진행자: 네, 주교님. 새해를 맞아 교구민들과 청취자들에게 새해 덕담 한 말씀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문 주교: 무엇보다 새해는 언제나 다시 시작될 수 있는 하느님의 시간입니다. 지난 한 해의 무게와 상처가 우리 마음에 남아 있더라도 주님께서 언제나 ‘두려워하지 말고 나에게 오너라’하고 초대하십니다. 그런 부르심에 우리가 다시 숨을 고르고 다시 희망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올 한 해에도 서로가 서로의 힘과 용기가 되어주는 시간이 되면 좋겠고 무엇보다도 우리 각자가 신앙인으로서 평화와 용기, 잔잔한 기쁨을 늘 이웃들에게 나눌 수 있는 그런 한 해가, 축복의 전달자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져봅니다.
♦진행자: 많은 분들이 주교님들은 새해 첫날, 어떻게 보내실까? 궁금해하는데요, 주교님께선 어떻게 보내셨습니까?
문 주교: 무엇보다 아침 미사를 봉헌하면서 한 해를 돌아보고 주님께 맡겨드렸고요. 올해는 무엇을 더 이뤄야 할까보다 올해는 어떻게 더 주님 마음에 가까이 머물 수 있을까를 질문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교구 안에 사제나 수도자, 나름대로 삶의 무게를 지고 교구민 한분 한분을 마음에 담아 기도를 했고요. 그러면서 새 일정을 바라보며 늘 마음에 한 가지가 남는 것은 어떤 계획보다 먼저 사람이 떠올라야 하고 성과보다 먼저 관계가 지켜져야 한다는 다짐이 컸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새해에 그 시간을 어떻게 살 것인지 좀 더 다시금 초심을, 마음에 새기는 하루를 보냈습니다.
♦진행자: 새해를 맞이해서 다짐을 하는 시간을 보내신 것 같은데요. 제주는 모든 곳이 일출 명소일 텐데요, 그래도 그중에서 주교님께서 생각하시는 일출 명소는 어딘지도 궁금합니다?
문 주교: 제주에는 여러 아름다운 장소가 있지만 많은 분께 물어보신다면 저는 더 조심스럽게 성산일출봉을 떠올리게 될 것 같습니다. 성산일출봉, 해돋이가 굉장히 풍경이 아름다운 말로 다 담을 수 없이 뭔가가 있는 힘이 느껴지는데요. 어둠이 거칠지 않은 새벽에 서서히 떠오르는 해를 보면서 다시금 그런 큰 위로와 함께 다시금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할 수 있는 마음을 갖게 되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그 일출이 우리 신앙의 모습과도 비슷하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삶이 막막할수록 바다 위에 떠오르는 첫 번째 그해의 희망을 통해서 하느님께서 먼저 우리에게 다시금 새로운 현실. 새로운 사실을 일깨우면서 지금 어느 곳에든지 그 빛을 맞이할 수 있는 마음. 그래서 그 희망의 순간들을 위해서 우리에게 찾아오신다는 그 느낌이 더 강하게 드는 장소인 것 같습니다.
♦진행자: 네, 성산일출봉 참 유명한 일출 명소죠. 아름다운 제주의 올 한 해의 사목 방향을 오늘 이 시간에 짚어보겠습니다. 이 시간은 유튜브와 cpbc빵 앱의 ‘보이는 라디오’를 통해서 생중계되고 있습니다. 지난주, 주교님께서도 교구청 직원들과 종무미사를 하면서 한해를 정리하셨을 텐데요, 어떤 한 해였다고 생각하십니까?
문 주교: 무엇보다도 종무미사를 교구청 직원들과 함께하면서 성과나 숫자로 정리할 수 있는 일보다 먼저 떠오르던 것은 현장들 속의 목소리와 표정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기쁨 속에 있는 공동체도 있었고 여전히 아픔과 상처를 안고 버텨야 하는 이웃들도 바라봐야 했었습니다. 특별히 제주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갈등과 불안 또 교회 안에서 느껴졌던 변화의 무게가 한 해 내내 우리 앞에 놓여 있었었고요. 그런 의미에서 지난 한 해는 뭘 잘했다기보다는 그러나 그 순간 교회가 멈추지 않고 그들과 함께 머물러 오려고 애썼고 또 이야기를 드리려고 노력했고 그래서 저는 지난 한 해가 헛되지 않았다고 믿고 싶고요. 그런 의미에서 묵묵히 수고하고 인내해 줬던 직원들과 신부님들 또 한 분 한 분 노력했던 분들에게 감사할 수 있었고요. 특별히 지난 한 해를 한마디로 정리해 보자면 ‘상처를 안은 채로 희망을 놓지 않으려 했던 한 해 그래서 함께 걸어가는 여정 안에서 포기하지 않았던 한 해’로 말하고 싶고요. 이런 단순한 회고에서 끝나지 않고 새해에도 좀 더 귀 기울이고 어떻게 하면 하느님 말씀이 어떻게 우리 현실 안에 숨 쉬는지를 함께 고민하고 찾아가는 여정으로 기억하고 싶습니다.
♦진행자: 지난 2025년에 제주교구에서는 ‘교구장과 함께하는 교회 음악에 관한 시노달리타스’,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를 위한 청년 프로그램’, ‘의정부 교구와 함께한 순례길’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했고 또 ‘교토 교구와의 자매결연’을 맺은 지 20주년이 된 해이기도 했습니다. 다양하고 의미 있는 시간을 가지셨는데, 주교님 개인적으로 뜻깊었던 건 어떤 건지 궁금합니다?
문 주교: 네, 여러 프로그램이 수만큼 풍성한 해였고 무엇을 했는가보다 그 시간 안에 구체적으로 누구를 만났는가 하는 것이 중요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따라서 직접 교구민들 또 그 현장에 있는 분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는 순간이 가장 뜻깊었다고 말할 수 있고요. 저희들이 이런 시노달리타스 여정 안의 다양한 주제로 장래, 음악, 청소년, 의정부와의 순례길 이런 내용들을 검토하면서 무엇보다도 우리의 신앙이라고 하는 것이 정말 경청의 자리 안에서 더 많이 기억돼야 하고 또 그런 시간들을 통해서 젊은이들 역시 오늘의 젊은이들이 가지고 있는 고민과 질문들을 함께하면서 그들과 교회가 어떻게 함께 걸어가야 되는지를 바라볼 수 있었고요. 또, 의정부교구는 정난주 마리아와 황서영의 교회사의 순교적 인물들을 살펴보는 면에서 부부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더 의미 있게 순례길을 대화할 수 있었고 그 길을 위에서도 우리가 무엇보다도 말이 아니라 몸으로서 함께 걷는 과정의 더 중요함을 깨닫는 시간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교토교구의 자매결연 20주년은 지난 시간의 단순한 교리를 넘어서 신앙의 여정을 존중하며 동행했던 증거의 시간이고 또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 안에서 교회가 좀 더 예언자로서 또 그러한 시대적 징표를 읽는 사람들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되는지 그런 것들을 살피는 시간이었고요. 따라서 이 최근 25년을 돌아보면서 가장 뜻깊었던 것은 하나의 특정된 사건이라기보다는 사람들 사이에서 함께 숨 쉬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던 시간이었지 않나 그런 의미에서 그 기억들이 새해 사목 방향 속에서 더 깊어지고 넓어지는 마음으로 2026년을 열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진행자: 지금 여러분께선 ‘2026년 신년대담-교구장에게 듣는다’ 천주교제주교구장이신 문창우 주교님과의 신년대담을 듣고 계십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올해 사목교서에 담긴 내용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2026년도 사목 방향은 ‘젊은이’인 것 같습니다. 앞서 언급하기도 하셨지만 지난 2025년에도 젊은이들과 함께하는 프로그램에 특별히 더 신경 쓰셨다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요, 올해도 이어가는 것 같습니다. 올해 전체적인 사목 방향을 설명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문 주교: 네, 올해 2026년 사목 방향의 중심은 젊은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청년 사목을 강화하겠다는 의미에 그치지 않습니다. 저는 이 방향을 젊은이들과 함께 교회가 다시 젊어지는 여정이라고 표현하고 싶고요. 먼저 분명하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젊은이들은 교회의 대상이 아니라 교회의 현재와 동반자라는 점입니다. 우리는 흔히 젊은이들을 위해서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묻지만 이제는 질문을 조금 바꿔야 될 때라고 생각해 봅니다. 젊은이들과 함께 무엇을 배울 것인가 또 무엇을 새롭게 시작할 것인가를 묻는 해가 바로 2026년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2025년 한 해 동안 젊은이들과 함께하면서 느낀 것은 그들이 신앙을 거부하고 있다기보다도 의미 없는 형식과 진심 없는 언어에 지쳐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래서 올해 사목 방향에서 더 많은 프로그램을 만들어가는 데 있다기보다는 좀 더 그들을 위해 듣는 교회, 머무는 교회, 실패해도 다시 시작하시는 교회의 초점을 맞추고자 했고요. 따라서 2026년에는 젊은이들과 함께하는 평화의 소공동체라는 사목의 축을 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을 잘하는 소수만이 아니라 정말 모두가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가운데 우리 젊은이들과 함께 그들과 삶을 나누고 또 그들에게 답을 주기보다는 동행하는 역할을 해가야 될 것이 아닌가. 따라서 이 사목 방향은 젊은이들을 향한 것이 아니라 모든 세대를 향한 초대라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교회가 좀 속도를 낮추고 어떤 관계를 더 택하면서 어른 세대로서는 또 때로 그들에게 경험을 나누는 증인으로서 그래서 교회 안에서 젊은이들이 세상과도 더욱 더 화해하고 또 그들이 그런 젊음의 여정들을 동반해가는 그 사목의 방향들을 함께 걸어가는 여정 안에서 좀 더 교회가 더 단순해지고 더 인간적이고 복음의 어떤 본래의 힘을 다시 발견하는 그런 자리가 되지 않겠는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진행자: 네, 올해 제주교구의 큰 키워드는 ‘젊은이’와 ‘평화’인 것 같습니다. 그럼 먼저 ‘젊은이’에 대해서 여쭙겠습니다. ‘젊은이’를 강조하신 이유가 있으실까요?
문 주교: 무엇보다 또 오늘날 젊은이들은 어느 세대보다 많은 가능성을 갖고 있지만 또 한편에서는 불안과 고독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경쟁과 비교 또 불확실한 미래 앞에 스스로를 지켜내느라 이미 지쳐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전히 오늘도 의미 있는 삶 진짜 관계를 맺고 싶은 것 평화로운 세상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것을 어디에서 어떻게 찾아야 할지 몰라 방황하고 있을 뿐입니다. 저는 이 젊은이들을 단순히 도움이 필요한 존재, 교회의 미래 자원으로 바라보고 싶지 않습니다. 오히려 젊은이들이 지금 이 시대의 교회와 사회가 잊어버린 그 감각을 일깨워주는 하느님의 질문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그들의 솔직한 물음, 그래서 때로는 교회를 불편하게 만들지만 그 불편함이 우리를 더 진실한 자리로 이끄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젊은이를 강조하는 이유는 교회가 다시 듣는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라고 말하고 싶고요. 또, 한 가지 중요한 이유는 평화의 문제입니다. 평화는 손으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평화는 갈등과 상처를 안고 있는 사람들이 서로 이해하는 과정에서 자라납니다. 젊은이들과 함께 평화를 이야기하는 것은 미래를 위한 투자가 아니라 지금 이 사회를 취하기 가장 현실적인 길입니다. 그래서 젊은이를 강조하는 것은 젊은이들만을 위한 선택이 아닙니다. 그것은 교회가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죠. 우리는 아직 누군가의 질문을 품을 만큼 젊은가. 이 질문 앞에서 우리 제주교구는 젊은이들과 함께 배우는 교회, 함께 흔들리고 함께 희망을 찾아가는 교회가 되고자 합니다. 그 여정 자체가 이미 복음의 증언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진행자: 그런 의미로 ‘새로운 방식으로 젊은이들과 함께하는 소공동체 재활성화’가 필요하다고 하셨습니다. 주교님께서 생각하시는 새로운 방식이란 어떤 건지 궁금합니다?
문 주교: 제가 말씀드리는 새로운 방식은 완전히 낯선 무엇을 만들어내지 않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지만 어느 순간 굳어져 버린 방식들을 좀 젊은이들의 삶의 리듬에 맞게 다시 숨 쉬게 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첫 번째는 모이는 방식에 있어서 어떤 변화, 우리가 갖고 있는 어떤 구조에서 벗어나서 정말 신앙의 자리로서 서로가 존중받는 그런 자리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내용보다 관계가 먼저인 공동체, 그래서 먼저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 관계, 판단하지 않고 끝까지 들어주는 분위기, 그래서 신앙이 흔들려도 쫓겨나지 않은 공동체가 새로운 방식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는 말하는 교회에서 듣는 교회를 전환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서로의 삶을 나누고 그 대화를 지켜주는 사람이 되면서 각자의 삶 안에서 정말 그런 복음의 발견들을 드러낼 수 있는 시간입니다. 네 번째는 평화의 연습장이 되는 소공동체입니다. 단순한 신앙의 모임이 아니라 갈등을 말로 풀어내고 다름을 견뎌내고 상처를 함부로 소비하지 않는 법을 배우는 자리라고 생각됩니다. 그런 작은 공동체 안에서 연습한 그 평화는 가정과 사회로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되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완성보다 과정이 존중받는 공동체, 그래서 함께 걸어가는 의지 자체가 이미 그러한 어떤 과정 안에서 복음의 열매라고 하는 믿음을 가지게 될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따라서 새로운 방식은 더 세련된 프로그램이 아니라 젊은이들의 삶으로 들어가서 함께 호흡하고 교회가 스스로 조금 내려놓을 수 있는 태도 그런 안에서 우리 제주교구가 그러한 평화의 씨앗을 뿌려가는 데서 조용하지만 살아있는 그런 삶의 증언이 시간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진행자: 젊은이들의 참여를 위해서 ‘문화와 예술의 사목적 역할 확대’를 이야기하셨습니다. 어떤 내용인지 설명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문 주교: 제가 문화와 예술의 사목적 역할 확대를 이야기할 때는 교회가 젊은이들을 끌어오게 한 장식이나 도구를 뜻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문화와 예술은 이미 젊은이들이 자기 삶을 해석하고 상처를 표현하면서 의미를 찾는 언어이기 때문에 교회가 그 언어를 존중하며 곁에 서겠다는 뜻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먼저 문화와 예술은 다 설명할 수 없는 것을 품는 공간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문화예술은 강요하지 않는 어떤 복음의 방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이것은 단순한 행사가 아니라 어떤 사목적인 태도의 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네 번째는 문화와 예술은 평화사목과도 깊이 연결되는데요. 그런 의미에서 함께 공감을 만들어가고 그런 단지 젊은이들이 평화를 구호가 아니라 삶의 기술로 배우는 그런 큰 도움이 되는 자리가 아닌가. 따라서 제가 말하려고 하는 문화예술의 사목적 역할을 학대는 교회가 무언가를 더 준비하겠다는 선언이 아니고 젊은이들의 표현을 복음적 자리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약속입니다. 그래서 그 약속이 지켜질 때 젊은이들은 교회를 하나의 기관이 아니라 자기 이야기를 안전하게 내려놓을 수 있는 집으로 느끼게 될 거고 그곳에서 신앙은 다시 삶과 연결되기 시작할 것입니다.
♦진행자: 주교님께서는 가톨릭찬양사도협회 지도를 맡고 계시기도 합니다. 그래서 지난해에 ‘교회 음악에 관한 시노달리타스’를 하신 건가 싶기도 한데요, 주교님께서 생각하시기에 교회 내에서 문화와 예술로 선교하는 젊은이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는지, 또 어떤 지원이 필요하다고 느끼시는지 궁금합니다?
문 주교: 저는 오래전부터 문화예술원에서 복음을 사라는 젊은이들 자체가 이미 선교의 현장이라고 느껴왔었습니다. 교회 안에는 이런 영상, 음악, 미술, 또 연극, 춤 등으로 신앙을 표현하는 젊은이들을 바라보면 그들은 누군가를 설득하려 하기보다 자기 삶으로 증언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말로 교리를 설명하지 않아도 노래 하나가 담긴 기도, 또 무대 위에서 흘린 땀과 침묵 속에 이미 복음이 담겨 있습니다. 저는 이런 젊은이들 교회의 주변뿐 아니라 오늘 교회가 가장 먼저 귀결해야 할 자리에 서 있는 이들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다만 이 젊은이들이 종종 겪는 어려움도 분명합니다. 이게 정말 사목이 되나 전례에 맞나 그게 취미가 아닌가 이런 질문 속에서 상처받고 인식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교회가 이들에게 무엇보다도 인정과 신뢰를 먼저 건네야 한다고 느끼고 있고요. 완성도 이전에 진심을 또 결과 이전의 과정을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따라서 지원이라는 것도 거창할 필요 없이 공간의 지원, 동반의 지원 아니면 신학적으로 어떤 신뢰를 해주는 지원 이런 것들이 중요하다고 보고요. 지난해 저희가 교회음악에 대한 시노달리타스에서 가장 크게 느꼈던 것은 교회음악은 단순한 기능의 장식이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 하느님께 나아가는 길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젊은이들이 서 있을 때 교회는 자연스럽게 다음 세대에 이어진다고 생각하게 되고요. 따라서 저는 문화예술로 선교하는 젊은이들을 이렇게 표현하고 싶습니다. 그들은 바로 교회를 바꾸려는 사람들이 아니다, 이미 교회가 될 줄 아는 사람들이라고 말입니다. 따라서 교회의 역할은 그들을 앞세우거나 이용한 것이 아니라 조용히 뒤에서 등을 밀어주고 넘어질 때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곁에 서주는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의 이런 문화와 예술은 교회의 가장 따뜻한 선교 언어가 될 것입니다.
♦진행자:다음으로 강조하신게 ‘평화’입니다. ‘평화’를 강조하신 이유도 궁금합니다?
문 주교: 평화를 중요하게 키우도록 강조한 이유는 평화가 더 이상 선택의 주제가 아니라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교회의 가장 절실한 소명이라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을 보면 겉으로는 큰 전쟁이 멀리 있는 것처럼 보여도 일상의 자리에서 많은 갈등과 단절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세대 간의 갈등 또 지역과 생각의 차이 경쟁과 비교적 생각나는 상처들 또 말 한마디가 쉽게 누군가를 밀어내는 분위기 등 평화는 무너진 뒤에야 지켜야 할 가치가 아니라 무너지기 전에 함께 배워야 할 삶의 방식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저는 단순히 평화를 싸우지 않는 상태로 이해하지 않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평화는 상처와 갈등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 안에서 서로를 포기하지 않는 관계의 상태입니다. 다시 말해서 평화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고 선언이 아니라 훈련입니다. 특별히 제가 살고 있는 제주 땅에서 평화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곳에 아름다운 만큼이나 아픔의 기억을 품고 있는 장소가 많이 있습니다. 그 기억은 아직 완전히 과거형이 되지도 않았고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감정과 선택 속에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제주교구에서 평화사목은 추상적인 담론이 아니라 기억을 존중하고 상처를 서두르지 않으면서 서로 이야기를 들어주는 끝까지 들어주는 태도가 시작되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젊은이들과의 관계인데요. 젊은이들은 평화를 말로 배우기보다 어른들이 어떻게 갈등을 다루는지를 보며 배웁니다. 교회가 갈등 앞에 편을 가르거나 침묵으로 일관한다면 평화는 공허한 말이 됩니다. 그러나 교회가 다름을 견디고 느리게라도 대화를 선택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그 자체가 가장 설득적인 교육이 됩니다. 제가 평화를 강조하는 건 분명합니다. 평화는 교회가 세상에 주는 메시지이기 전에 교회가 먼저 살아내야 될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올해 제주교구가 추가하는 평화는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작은 공동체 안에서 존중해주고 젊은이들의 인내 있는 동행을 하고 또 상처받은 이들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용기 속에서 자라나기를 기대합니다. 그렇게 일상 속에서 길러진 평화야말로 이 시대가 교회에게 가장 간절히 요청되는 복음의 얼굴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진행자: ‘평화의 공동체’로 거듭나기 위한 노력들에 대해서도 사목교서에 담으셨는데요. 노력 중의 하나로 ‘평화의 길’을 이야기하셨습니다?
문 주교: 네, 사목 교서에서 말씀드린 평화의 길은 새로운 행사를 하나 더 만들겠다는 제안이라기보다는 우리 교회가 어떤 태도로 이 땅을 걸어갈 것인가에 대한 영적인 어떤 방향을 담은 표현입니다. 제가 말하는 이 평화의 길은 먼저 몸으로 걷는 길입니다. 제주에는 이미 자연이 아름다운 것 더불어 깊은 기억에 스며든 길들이 있습니다. 그 길을 걷는 것은 그냥 풍경을 소비하는 일이 아니라 이 땅에 품어 온 기쁨과 상처를 함께 느끼는 일입니다. 그러나 평화의 길은 단지 순례 코스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동시에 관계의 길입니다. 함께 걷다 보면 속도가 다르고 체력이 다르고 말이 많아지는 순간도 또 침묵이 길어지는 순간도 생깁니다. 그 차이를 조율하는 과정 자체가 이미 평화의 훈련입니다. 앞서가는 일을 기다리고 뒤처져있는 이를 제쳐가지 않도록 이것이 제가 바라는 평화공동체의 한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이 길은 기억을 존중하는 길입니다. 제주 평화는 과거를 덮는 데서 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픈 기억을 성급히 정리하지 않고 이름을 불러주고 그 고통이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묻고 있는지 귀 기울일 때 자라납니다. 평화의 길은 늘 질문을 동반합니다. 우리는 누구의 이야기를 아직 듣지 못했는가? 누구를 너무 빨리 판단하고 지나쳐왔는가? 그래서 마지막으로 평화의 길은 젊은이들과 함께 걷는 길이다. 그래서 어른들이 먼저 평화를 선택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되는데요. 따라서 갈등을 회피하지 않게 폭력적인 언어를 쓰지 않고 편 가르기보다 대화를 택하는 그런 교회의 모습이 바로 살아있는 교과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 사목교서에서 말한 평화길이란 특별한 사람들만 걷는 길이 아니라 느리더라도 함께 걷고 완벽하지 않아도 멈추지 않는 길입니다. 그 길을 위해서 제주교구가 평화를 가르치는 교회가 아니라 평화를 배우는 교회, 조용히 평화를 증언하는 공동체로 자라가고자 합니다.
♦진행자: 말씀하신 것처럼 제주에는 성지와 순례지가 많습니다. 그중에서 주교님께서 좋아하시거나 의미 있는 곳을 소개해 주신다면 어떤 곳을 소개해 주실까요?
문 주교: 제 개인적으로 신앙에서 자주 마음에 떠오른 장소는 무엇보다 중문성당, 4·3기념성당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것이 특별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제주 4·3사건의 학살터 위에 성당이 있다고 하는 상징적인 의미뿐만 아니라 오늘 우리 교회가 단지 추상적인 말로서 어떤 평화가 아니라 정말 평화의 어떤 단어들을 잊어버리지 않고 기억을 푸는 용기에서 시작하면서 정말 상처를 성급히 정리하지 않고 하늘 앞에 그대로 가져가서 함께 공감하고 기도하는 것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성당을 찾을 때마다 어떤 침묵 속에서 우리는 다시 한번 무엇을 너무 빨리 지나쳐 왔는가 아니면 이름을 불리지 못한 그런 아픔이 어떤 것이었는가를 묻게 되지 않는가. 그 질문 자체가 순례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이 순례지를 소개하고 싶은 이유는 단지 구경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기억과 책임을 마주하는 것이기 때문이고요. 또 이 순례지는 나름대로 정말 평화가 멀리 있지 않고 기억을 품고 함께 아파할 줄 아는 마음을 조금은 더 기억하고 생각하는 그 장소가 더욱더 다가온다고 생각합니다.
♦진행자: 제주는 ‘4.3항쟁’의 상처가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어떻게 치유해서 평화로 나아갈 수 있을까요?
문 주교: 제주 4.3은 이미 끝난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지금도 사람들의 마음과 관계 속에 의해 죽은 상처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치유와 평화로 나아가는 길은 역시 빠른 해답이나 단순한 처방으로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 길은 오래 걸리기도 할 것이고 때로는 멈춰서야 하는 인내의 여정에 가깝습니다. 제가 먼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치유를 서두르지 않는 용기 그리고 두 번째는 기억을 공동의 책임으로 나누는 과정 그리고 또 세 번째는 단순히 평화는 사과와 보상만으로 완성되지 않고 무엇보다도 우리가 그 위에 필요한 것은 관계의 회복으로 이어져 갈 수 있도록 좀 더 평화로 걸어가는 실제적인 길을 더 모색하는 고민이 필요하고요. 또 마지막으로 특히 젊은 세대에게 4.3을 어떻게 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단지 비극적인 사실을 나열하는 것으로만 남을 때 역사는 멀어집니다. 그 아픔 안에서도 인간이 인간을 포기하지 않으려 했던 이야기 또 양심을 지키려 했던 선택들을 함께 전할 때 4.3은 평화를 배우는 살아있는 교과서가 아닌가. 그래서 신앙인으로 보자면 치유평화는 단순히 우리의 십자가를 정직하게 통과하는 가운데 상처를 간직한 몸으로 제자들 앞에 섰던 예수님 부활의 그 기억처럼 제주지역도 상처를 부정하지 않고 품을 때 비로소 평화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오늘 잃어버리는 평화가 아니라 기억을 품는 평화, 침묵을 강요하지 않는 평화, 다음 세대에 꼭 폭력이 아닌 대화의 길을 물려주는 그런 평화, 바로 이런 어떤 평화의 증언들이 이어져가기를 희망해 봅니다
♦진행자: 그런가 하면 지금 우리 시대는 세대 간, 남녀 간, 그리고 사회 곳곳이 분열되고 갈라져 있는 모습입니다. 그래서 주교님께서는 이런 현실의 문제 해결을 위해서 새로운 형태의 평화 실천을 이야기하셨습니다. 가정에서 시작되길 희망하셨는데요?
네, 제가 가정에서 시작되는 평화실천 이유는 아주 단순합니다. 오늘 우리가 겪는 세대 간 남녀 간 사회적 분열의 모습은 대부분 집 밖에서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라 집안에서 충분히 다루지 못한 그 감정과 관계가 확장된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정은 가장 작은 공동체이지만 동시에 우리가 처음으로 다름을 배우는 자리입니다. 세대 차이를 처음 경험하는 것도 가정이고 말이 통하지 않는 답답함과 상처를 처음 느껴보는 것도 가정입니다. 그래서 가정은 갈등의 출발점이 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평화를 연습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학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말하는 새로운 형태의 평화 실천은 어떤 거창한 화해 선언이나 특별한 운동이 아닙니다. 오히려 작고 느리고 일상적인 어떤 선택들을 할 수 있습니다. 먼저 말을 줄이고 귀를 여는 평화, 또 이기기보다는 관계를 지키는 선택들, 또 셋째는 상처를 즉시 해결하지 않는 어떤 인내심의 그런 노력들, 이런 가정의 작은 연습들이 쌓일 때 우리 사회에서도 다른 사람을 적으로 보기보다 대화의 상대로 바라볼 수 있는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존중 받아본 사람은 사회에서도 타인을 존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제가 희망하는 평화실천을 요약한다면 거리에서 외치는 평화가 아니라 식탁에서 시작되는 평화, 토론이 아니라 대화로 이어지는 평화, 완벽하지 않아도 다시 말을 걸을 수 있는 용기로 유지되는 평화. 그래서 교회는 이런 평화를 가정 안에서부터 조용히 키워가고 싶습니다. 그렇게 자란 평화가 결국 세대와 사회 갈라진 팀을 조금씩 메워줄 것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진행자: 평화 실천을 위해서 다음으로 말씀하신 게 ‘생태적 회심과 지속 가능한 제주의 현실을 돌보는 일’입니다. 어떤 내용인가요?
제가 생태적 회심과 지속 가능한 제주의 현실을 돌보는 일을 평화 실천 한 축으로 말씀드린 이유는 오늘 우리가 겪는 많은 갈등의 뿌리에 자연의 관계가 무너진 현실이 놓여있기 때문입니다. 평화는 사람 사이의 문제만이 아니라 사람과 자연 사이의 관계가 바로 설 때 비로소 완성되는 가치이기도 합니다. 먼저 생태적 회심이란 환경을 조금 더 보호하자는 윤리적 권고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것은 삶의 태도를 바꾸는 깊은 성찰입니다. 자연을 개발의 대상이나 소비의 자원으로만 바라보던 시선에서 벗어나서 함께 살아간 이웃으로 다시 인식하는 전환입니다. 그래서 이 회심이 없이는 어떤 정책이나 제도도 오래 지속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제주는 바로 특별히 이 문제를 더 절실히 안고 있는 땅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름다운 자연 덕분에 많은 혜택을 누려왔지만 동시에 그 자연이 얼마나 쉽게 상처받을 수 있는지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개발과 편리함, 생계와 보존 사이의 갈등은 단순한 찬반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삶을 다음 세대에 물려줄 것인가에 대한 선택입니다. 그래서 제가 말하는 지속 가능한 제주 현실을 돌본다는 것은 어느 편을 드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연의 목소리 먼저 귀 기울이고 지역주민들의 삶을 함께 고려하면서 단기적인 이익보다 긴 호흡의 책임을 선택하는 태도입니다. 이 과정에서 교회의 역할은 답을 제시하는 그런 심판자가 아니라 대화를 가능하게 하는 공간을 마련해주는 동반자로 생각합니다. 서로 다른 입장이 안전하게 말해줄 수 있고 상처가 즉시 소비되지 않으면서 공통의 미래를 함께 상상할 수 있는 자리를 지켜주는 것 그것이 교회의 생태적 사명입니다. 또한 생태적 회심은 아주 일상적인 실천에서 시작됩니다. 그래서 가정에서 소비습관, 또 청들과 함께한 생태교육과 체험, 또 자연에 대한 언어 하나를 바꾸는 것, 이 작은 형태로 쌓여서 폭력이 아닌 돌봄의 문화를 만들어냅니다. 바로 평화의 토양이라고 생각됩니다. 결국 생태적 회심과 지속가능성은 이렇게 연결됩니다. 자연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사람은 사람 또한 함부로 대하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제주의 자연을 지키는 단지 환경을 보완하는 일이 아니라 이 땅에 살아간 삶의 방식 자체를 평화롭게 바꾸는 영적 여정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이 여정에서 교회가 함께 걷고자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진행자: 다음으로 ‘이주민과 사회적 약자와의 연대’도 말씀하셨습니다. 이 부분도 설명을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문 주교: 네, 제가 ‘이주민과 사회적 약자와의 연대’를 평화실천의 중요한 축으로 말씀드린 이유는 평화가 가장 먼저 약한 이들의 삶을 시험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어떻게 대하느냐가 우리 사회와 교회의 평화가 진짜인지 아닌지를 가장 분명하게 드러냅니다. 먼저, 이주민과 사회적 약자들은 특별한 보호 대상이기 전에 우리 공동체 이웃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목소리를 동반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기는데요. 이런 차원에서 그들과 제가 이렇게 말하려고 하자는 연대는 단순한 지원이나 시혜가 아닙니다. 연대는 먼저 이야기를 듣는 자리로서 함께 들어가는 것이고요. 언어가 서툴고 제도가 낯설고 차별의 경우로 마음을 닫게 된 이들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것. 그것이 평화의 출발점이라서 생각됩니다. 또한 사회적 약자와 연대는 우리에게 불편함을 요구하며 속도를 늦추고 기준을 다시 묻고 효율보다 사람을 먼저 선택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불편 속에서 교회는 복음의 가장 본래적인 얼굴을 드러내게 됩니다. 따라서 오늘날 특히 젊은이들과 이 연대를 함께 살아가는 것이 중요한데요. 이주민과 약자에 대한 연민을 말로 가르치기보다 함께 밥을 먹고 같은 공간에서 일하고 같은 이야기를 나눈 경험을 통해서 배울 때 연대는 이념이 아니라 삶의 태도가 됩니다. 이것이 평화를 다음 세대에 전하는 가장 현실적인 교육이라 할 수 있고요. 그래서 교회의 역할은 이 연대의 한복판에 대변자가 되기보다 동반자가 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대신 말해주기보다 함께 말하고 대신 결정하기보다 함께 고민하고 그들이 스스로의 존엄을 지킬 수 있도록 곁을 지켜주는 것이 교회의 길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이주민과 사회적 약자와의 연대는 어떤 특정 사목 분야의 추가가 아니라 교회가 어떤 방향에 서 있는가를 드리는 기준입니다. 그래서 가장 약한 이들이 삶의 곁에 머물 수 있을 때 우리 평화는 말이 아니라 삶으로 증언되기 시작합니다.
♦진행자: 네, 그 외에 젊은이와 노인, 그리고 가난한 이들과의 연대도 이야기하셨는데요. 주교님.
문 주교: 네, 젊은이와 노인 그리고 가난한 이들과의 연대를 함께 이야기한 이유는, 이 세 그룹이 각기 다른 문제를 안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같은 구조 속에서 고립되고 있다는 공통점을 갖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젊은이와 노인은 서로 멀리 떨어진 존재처럼 느껴지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닮은 외로움을 안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은 불안정한 미래와 관계의 단절 속에 혼자 버티고 있고요. 노인들은 역할을 다한 채 이 조용히 밀려난 느낌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계십니다. 서로 다른 세대이지만 여전히 ‘나는 여전히 필요한 사람인가?’라는 질문 앞에 서 있다는 점에서는 같습니다. 그래서 연대의 출발점은 누군가를 돕는 프로그램 이전에 서로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만남의 구조를 회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또한 가난한 이들과의 연대는 이 모든 우리들과 어떤 다른 연대들을 함께 단단하게 묶어진 기준이라고 봅니다. 가난은 단지 물질적인 부족이 아니라 선택지와 목소리가 제한된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 사회가 가장 약한 이들을 곁에 머물 수 있는가 그 질문 앞에 교회의 진심이 드러난다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제가 강조하기도 한 연대는 그냥 시혜나 일방적인 도움의 관계가 아니라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시간을 보내고 함께 질문을 나누는 그런 관계라고 생각됩니다. 이런 연대 속에서 우리 젊은이들도 가난한 일과 노인 곁에서 성공과 어떤 효율만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으면서 그 경험이 어떤 강의보다 깊은 평화의 교육의 장이 된다고 생각해 봅니다.
♦진행자: ‘2026년 신년대담-교구장에게 듣는다’ 오늘은 천주교제주교구장이신 문창우 주교님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지역 현안과 사회 현안에 대해서 여쭙겠습니다. 제주 지역사회 안에서 풀어야 할 숙제들도 많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제2공항 문제인데요, 건설 계획이 발표된 지 10년이 넘었습니다. 지금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문 주교: 네, 맞습니다. 제주도의 제2공항 문제는 발표한 지 10년이 넘도록 제주 지역 사회 전체를 깊은 갈등 속으로 이끌어놓은 숙제입니다. 여전히 절차와 내용, 도민 의견의 문제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단순한 결론이나 빠른 해결이 쉽지 않은 현실입니다. 그래서 계획과 절차는 여전히 진행 중인데요. 제2공항 건설계획은 2015년도 처음으로 발표된 이후에 정부 차원에서 기본 설계와 전략·역량 평가 등 행정 절차를 계속 진행해 오고 있는 현실입니다. 그리고 또한 도민 의견과 갈등이 여전히 핵심적인 쟁점으로 계속 부각되고 있고요. 또 반대의 이유들도 여러 층위로 얽혀 있습니다. 환경단체와 지역사회 내부에서는 조류 충돌 등 안전 문제와 지하수와 생태계의 영향이나 공항 수요 전망의 불확실성 그리고 지역개발과 보존의 균형 문제 등 중요한 이슈로 남아 있습니다. 이런 문제들 때문에 여전히 갈등이 쉽게 해소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책 방향과 지역사회 논의가 병행되고 있는 현실 안에서도 그런 충분한 검토가 이루어지지 못한 가운데 서로 찬반의 의견들이 팽팽하게 맞서 있습니다. 정리해 보자면 이런 여러 행정 절차가 진행되는 과정이 있지만 도민의 의견이 여전히 첨예하게 엇갈려 있고 또 다양한 환경적인 쟁점들이 갈등의 핵심 요소로 남아 있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단순히 이 문제는 공항 건설 여부의 판단 이상에 도민 공동체 함께 미래를 성찰하고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이냐 깊은 논의가 필요한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따라서 그 갈등을 대화 존중으로 풀어가는 과정 자체가 제주사회의 평화를 실천한 중요한 장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진행자: 제2공항에 대한 제주교구와 한국천주교회의 입장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문 주교: 제2공항 문제에 대한 천주교제주교구와 한국천주교의 입장은 단순의 자기결정권에 대한 깊은 우려를 담고 있습니다. 먼저 제주교구의 공식 입히 정책 찬반을 넘어서 생태와 공동체의 평화 그리고 절차적 정당성과 도민장은 굉장히 신중한 접근 속에 우려 표명을 하고 있는데요. 국토교통부가 제2공항 사업을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방식에 대해 우려를 표명해 왔습니다. 제주교구 생태환경위원회와 인천교구 환경사목부, 가톨릭환경연대 등은 정부가 주민 의견을 충분히 듣지 않게 진행하고 있다는 것은 절차적 정당성을 훼손한 것이라고 지적해 왔습니다. 이들은 다음 같은 점을 특히 문제로 봤는데요. 제주 지역의 환경적 한계와 생태계 파괴 위험이 과소평가가 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주민의 자기결정권 행사가 부족이 되고 있다는 것 따라서 도민 스스로가 미래를 결정할 수 있는 충분한 논의와 과정이 빠져 있다는 점 그래서 지역 공동체 내부에 심각한 갈등과 불신이 생기고 있다는 점 그런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의 태도는 개발의 필요성 자체를 단순히 반대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생명과 자연을 존중하고 공동체와 함께 미래를 성찰할 수 있도록 절차적 공정성과 도민의 목소리를 충분히 듣는 과정을 요구하는 것에 중심을 두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 한국천주교회의 차원에서는 어떻게 보고 있냐면 공식 문서로 일일이 발표된 것은 아니지만 교회가 생명평화, 생태적 책임의 가치를 중요하게 강조한 전통을 보면 생태보전과 지속 가능성의 원칙을 지켜야 된다. 그리고 공동체와 상승을 위한 대화를 촉진해야 된다. 그리고 이런 대화의 장 속에서 교회가 중립적인, 중재자의 역할의 태도를 취해 가야 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런 생태적 책임과 절차적 정의, 공동체적인 평화의 그런 가톨릭 교리 안에 드러나고 있는 사안에 접근한다고 볼 수 있고요. 현재 제2공항 논의의 핵심과 교회가 우려되는 점은 교회가 문제 삼는 부분은 단지 공항 건설 자체가 아니라 지역사회 갈등에 심한 생태 환경 영향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부족하다는 것. 도민의 자발적인 합의와 참여 부족 같은 점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개발과 보완이 모두 제주 사람들의 생명의 질과 공동체 평화에 영향을 준다는 점을 이 문제를 신앙윤리적인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런 속에서 정말 정치적 논쟁이기 전에 사람의 생명과 존엄이 짓밟힌 그런 역사의 상처가 되지 않도록 우리가 함께 이 문제에 대해서 지금도 함께 고민하고 그런 것들이 잘 풀려갈 수 있도록 제반 노력을 다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진행자: 제주 4·3 항쟁도 잊지 않아야 할 일입니다. 지난달에 이재명 대통령이 제주 4·3항쟁 당시 강경 진압을 주도한 인물 중 한 명인 고(故) 박진경 대령에 대한 국가유공자 지정을 취소 검토하라고 지시했는데요, 주교님께서는 이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문 주교: 이 질문은 매우 조심스럽고 동시에 피할 수 없는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지난달 이재명 대통령이 고 박진경 대령에 대한 국가유공자 지정 취소 검토를 지시한 일은 단순한 행정조치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어떤 기억에 서 있는가를 다시 묻는 행위라고 봅니다. 저는 이 사항을 찬성이다, 반대다라는 정치적인 언어로만 말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교회 시선은 늘 피해자와 상처 입은 이들의 자리에서 시작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4.3의 진실을 이미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민간인들이 희생되었고 과정에서 과도한 폭력과 강경진압이 자행됐다는 사실은 국가 차원의 조사와 사과를 통해서도 확인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역사적 평가와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는 인물에게 여전히 국가유공자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이 피해자와 유가족의 마음에 어떤 상처를 남아 있는지를 우리는 진지하게 물어야 합니다.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이 문제는 특정 인물을 단죄하거나 복수를 말하는 일이 아니라 국가가 어떤 기준으로 영예를 부여하는가 그리고 그 기준이 인간의 존엄과 생명의 가치에 부합하는 것을 성찰하는 과정이라는 점입니다. 신앙의 관점에서 보자면 기억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떤 기억을 기념하고 어떤 기억은 침묵 속에 묻혀왔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늘 이렇게 묻고 있습니다. 가장 작은 이들 가장 억울한 이들의 목소리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만약 국가가 진정으로 4.3의 아픔을 기억하고 다시 그런 비극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면 상징과 명예의 영역에서도 그 진실에 걸맞는 선택이 뒤따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과거를 부정하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과거를 정직하게 맞이하는 용기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과정이 동시에 또 다른 상처나 분열을 낳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봅니다. 더욱더 중요한 것은 속도보다는 숙의, 결론보다는 경청, 판단보다 애도입니다. 피해자와 유가족의 이야기가 충분히 존중받고 사회 전체의 결정을 정치적 승패가 아니라 공동의 양심에 대한 응답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진행자: 국가 폭력으로 인한 희생.. 제주 4·3 항쟁을 비롯해서 여순항쟁, 5·18민주화운동.. 그리고 지난 2023년 12월에 일어난 내란까지~!! 지난 2023년 12월 3일에 일어난 내란에 대해서 여쭙겠습니다. 1년이 넘도록 내란은 종식되지 않고 있습니다. 주교님께서는 어떻게 현 상황을 보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문 주교: 이 질문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가장 무거운 양심의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사안을 어떤 진영의 언어로 혹은 정치적 해석으로만 바라보고 싶지 않습니다. 오히려 국가폭력이 반복되어 온 한국 현대사회의 연장선 안에서 그리고 그로 인해 상처 입은 사람들의 자리에서 바라보고자 합니다. 내란 이후에 현 상황이라는 인식을 말하자면 제주 4.3이나 여순 사건 또 5.18은 모두 국가가 자기 국민을 보호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폭력이 주체가 되었던 역사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때마다 뒤늦게서야 진실을 맞이했고 또 뒤늦게서야 사과와 책임을 이야기해 왔습니다. 그런데 2024년 12월에 일한 이 내란은 과거 일이 아니라 지금도 진행 중에 있는 상처라는 점에서 더욱 심각합니다.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책임은 명확히 가려지지도 않았고 진실은 여전히 서로 다른 말로 갈라져 있으며 사회는 깊은 피로와 냉소 속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현재 제가 이 상황을 바라보면서 우려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내란 그 자체보다 더 위험한 것은 비정상이 일상이 되어가는 과정입니다. 헌법과 민주주의 사회가 흔들렸음에도 ‘그럴 수도 있다’는 말이 나오고 폭력적 언어와 선동이 반복되어도 의견이 차이로 포장되면서 진실을 묻는 그 목소리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외면당하는 분위기. 이것은 단순한 정치적 혼란이 아니라 공동체의 도덕적 그런 감각이 마비되는 징후라고 생각합니다. 신앙인으로 보자면 지금 위기는 제도이기 전에 양심의 위기입니다. 무엇이 옳은지 몰라서가 아니라 알고도 말하지 않는 침묵, 불편함을 피하기 위해 진실을 미룬 태도가 사회를 더 깊은 혼란으로 밀어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란 종식을 위해 지금 가장 시급한 것은 정말 첫 번째로 진실을 끝까지 밝히는 의지, 그리고 두 번째는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 그런 구조를 만드는 것, 세 번째는 우리 시민들의 양심이 다시 깨어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진행자: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의 의석수가 없었다면, 그래서 비상계엄이 해제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참 생각하기도 싫은데요. 그러면서 드는 생각이 투표가 얼마나 중요한지입니다. 올해 6월에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있습니다. 어떤 후보를 선택해야 할지, 식별의 기준으로 삼아야 할 게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지 궁금합니다.
문 주교: 네, 말씀하신 그 가정 자체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는 저절로 작동되지 않고 아주 구체적인 선택에 서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 투표의 중요성은 추상적인 구호가 아니라 공동체 운명을 좌우하는 실제적인 책임입니다. 그렇다면 다가오는 지방선거에서 우리가 신앙인으로서 또 시민으로서 어떤 식별의 기준을 가져야 할까를 묻는 이 질문은 매우 본질적인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특정 정당이나 인물을 말하기보다 단 몇 가지 기준을 제안하고 싶은데요. 권력을 어떻게 이해하는 사람인가, 후보자가. 또 후보자가 약자의 자리에서 말하고 있는가. 또 후보자가 갈등을 다루는 방식은 어떠했었는가. 그리고 후보자가 기업과 책임을 존중하고 있는가. 그리고 후보자가 말보다 과정을 존중하고 있는가. 또 마지막으로 이런 신앙의 언어로 말하자면 투표는 누군가를 선택한 행위기 전에 우리가 어떤 공로를 원하는가를 고백하는 행위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권하고 싶은데요. 가장 시끄러운 사람보다 가장 많이 듣는 사람을 그리고 가장 강해 보이는 사람보다 가장 책임질 줄 아는 사람을 그리고 가장 편을 가르는 사람보다 가장 많은 사람을 살피는 사람을 선택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그 선택이 완벽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식별하라는 양심을 포기하지 않는 것 그 자체가 이미 민주주의를 지키는 가장 중요한 행동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투표는 하루의 행위이지만 그 책임은 공동체의 미래로 이어집니다. 그 무게를 함께 느끼고 계시다는 것 자체가 우리 사회에 아직은 희망이 남아 있다는 증거라고 저는 믿습니다.
♦진행자: 앞서 사목 교서에 담긴 내용에 대해서 자세히 이야기 해주셨지만 2027년…. 내년에는 한국교회의 큰 축제가 열립니다. 서울 세계청년대회를 위해서 제주교구도 열심히 준비하고 있을 텐데요, 제주교구대회에서 야심 차게 준비하고 있는 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문 주교: 이 질문을 받으면 저는 좀 야심 차게 준비한 프로그램이라기보다도 먼저 제주교구가 어떤 마음으로 이 시간을 맞이하고 있는가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주교구대회는 뭔가를 크게 보여주기 위한 무대가 아니라 제주가 지닌 신앙의 그 결을 세계 청년들과 나눌 자리가 돼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제주교구대회의 핵심 방향은 보여주는 대회가 아니라 어떤 머무는 대회가 되도록 해야 되지 않겠는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제주가 가진 장점 중의 하나는 무엇보다도 제주의 어떤 과거의 경험 안에서 평화의 순례, 경험의 순례들을 어느 때보다도 신앙의 여정 안에서, 기도 안에서, 증언 안에서 문화와 예술로 그들에게 다시금 이 땅의 폭력이 왜 반복되느냐는 질문을 머리가 아니라 삶의 감각으로 품고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장이 중요하다고 여겼고요. 또 하나의 중요한 준비는 우리 제주교구민들과 진솔하게 우리 젊은이들이 만나는 시간들을 기대합니다. 그래서 그들의 그러한 만남 속에서 신앙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내는 것이라는 걸 우리 청년들이 함께 배우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또 청년들이 주인공이 되는 그런 구조를 우리가 만들어 가야 되지 않겠는가 생각하고요. 또 제가 제주교구에서 가장 기대하는 한 장면은 모두가 환호하는 순간이 아니라 청년 몇 명이 하느님 섭리 안에서 정말 서로서로 울고 웃는 가운데 서로 기도하면서 정말 세계 청년대회에 드러난 그 본래의 그런 가톨릭 정신이 제주 안에서도 살아있는 증거로서 드러날 수 있는 그런 장면이 연출되면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 제주교구대회는 새로운 기술과 화려한 연출이 아니라 정말 서로 믿음과 그런 평화의 가치들을 또 제주의 역사 안에서 함께 교회 역할들을 고민하면서 함께 제주의 교구의 섭리 안에 하느님께서 어떻게 우리의 신앙의 발자취를 이끌어오셨는가를 우리 세계 젊은이들과 깊은 그런 매력들을 만나는 자리의 축제로서 준비하고 있습니다.
♦진행자: 네, 이제 신년대담을 마칠 시간인데요.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고 계시는 교구민들과 지역민들에게도 격려의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문 주교: 네, 이제 이 시간이 눈에 띄지 않지만 지금 이 시간에도 가정을 위해 애쓰는 분들 또 불안한 미래 앞에서 포기하지 않는 젊은이들 또 하루하루를 견뎌내시는 어르신들 또 인정받지 못한 제 자리를 지키는 수많은 이웃들을 생각해 보게 됩니다. 결코 그분들의 삶이 헛되지 않고 성과가 기록되지 않아도 또 박수로 보답하지 못해도 하느님께서 그분들의 모든 하루하루를 어떻게 견뎌내는지 또 누구에게 마음을 내주고 있는지 알고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올 한 해도 우리가 좀 더 서로서로를 위해서 이렇게 버텨주고 위로해 주고 또 서로서로 기억하면서 이 세상 안에 작은 용기와 기쁨을 갖고 주님의 진정한 평화의 여정을 함께 걸어갈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하는 그 마음을 나누고 싶고요. 그런 속에서 여러분 모두에게도 하나님의 큰 위로와 축복을 전하고 싶습니다.
♦진행자: 네, 2026년 신년대담 교구장에게 듣는다. 천주교제주교구장이신 문창우 주교님과 함께했습니다. 주교님 마치기 전에 주교님께서 좋아하시는 성가 한 곡 전해드리고 싶은데요. 어떤 성가를 들어보면 좋을까요?
문 주교: 네, 가톨릭 성가 39번, ‘하나 되게 하소서’라는 노래를 좋아합니다.
♦진행자: 네 주교님의 신청곡은 오늘 끝 곡으로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오랜 시간 좋은 말씀 나눠주셔서 감사드리고요. 주교님의 영육 건강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주교님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