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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장애인들의 대부' 천노엘 신부 선종...''40년 발달장애인 사랑 외길''

김리원 | 2025/06/02 10:19

(광주가톨릭평화방송) 김리원 기자 = 일평생 장애인 인권향상과 복지증진에 이바지한 천노엘 신부가 한국시간으로 어제(1일)오전 8시 30분쯤 선종한 가운데 그의 일대기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남겼습니다.

천 신부는 지난 1957년 성골롬반외방선교회 소속 선교사로 한국에 들어와 60년 넘게 광주에 머물며 사제이자 복지운동가 그리고 이웃으로 살아왔습니다.
 
아이들을 바라보는 천노엘 신부<사진제공=사회복지법인 무지개공동회>

'장애인은 돌봄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야 할 사람입니다'라는 신념은 그가 남긴 삶의 방향이자 오늘날 광주지역 복지운동의 뿌리가 됐습니다.

지난 1932년 아일랜드 남부의 작은 농촌 마을에서 태어난 천노엘(본명: 오네일 패트릭 노엘)신부는 1956년 사제품을 받고 이듬해 한국으로 파견됐습니다.

당시만 해도 한국은 전쟁 직후의 혼란 속에 있었고 낯선 언어와 문화, 가난과 상처 속에서 그가 처음 도착한 곳은 광주였습니다.

천주교광주대교구 소속 본당에서 24년 동안 사목하며 지역 주민들과 깊은 인연이 있는 천 신부는 '사제는 성당 안에만 있어선 안 된다'는 생각으로 복음의 시선을 사회적 약자에게로 옮겼습니다.

그는 복지 개념조차 희박하던 1981년 한국 최초의 발달장애인 공동생활가정(그룹홈)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대부분의 발달장애인은 수용시설에 격리돼 있었고 가족조차 이들을 드러내기를 꺼리던 시절이었습니다.

하지만 천 신부는 발달장애인과 한 집에서 살며 함께 식사하고 병원에 가고 이들의 생일을 챙기며 ‘동거인’이자 ‘삶의 동반자’가 됐습니다.

천 신부는 이후 사회복지법인 ‘무지개공동회’를 설립해 발달장애인을 위한 복지체계를 체계화했습니다.

엠마우스복지관, 직업재활시설, 주거지원시설 등 그가 구축한 자립 지원 시스템은 광주를 넘어 전국 복지계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광주대교구 사회복지법인 무지개공동회는 현재 그룹홈을 운영하며 발달장애인이 스스로 삶을 꾸리고 지역 사회에서 어울려 살아갈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천노엘 신부 사제수품 60주년 기념미사<광주가톨릭평화방송DB>

그룹홈에 사는 입주자들은 함께 요리하고 시장에서 장을 보며 다양한 직업 현장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는 형식적인 도움보다 관계 속에서 장애인의 삶을 지지해야 한다는 실천적 복지 철학을 남겼습니다.

천 신부는 지난 2016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특별귀화 허가를 받고 한국 국적을 취득했습니다.

그는 "한국인으로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봉사하며 살아가겠다"는 말로 그 의미를 전했습니다.

당시 귀화 소식은 언론과 시민들 사이에서 큰 화제가 됐습니다.

많은 이들은 “이보다 더 한국적인 삶이 어디 있냐”며 진심어린 박수를 보냈고 천 신부를 두고 "삶으로 한국을 껴안은 선교사"라고 불렀습니다.

귀화 후에도 그의 일상은 변함없었습니다.

여전히 광주시 광산구 송정동의 그룹홈 한 채에서 발달장애인들과 함께 살며 휠체어 바퀴를 닦아주는 모습이 그대로였습니다.

천 신부의 삶은 크고 요란한 변화를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곁에 있음’으로 변화를 만들었습니다.

누구보다 조용했지만 누구보다 가까운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삶에 감동한 지역 주민과 신자, 장애인 가족들은 "신부님은 말을 많이 하지 않으셨지만 늘 행동으로 보여주셨다"고 기억했습니다.

장애인들의 대부인 천 신부는 긴 여정을 마치고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그가 남긴 철학과 실천은 광주의 복지 현장에서, 그룹홈의 식탁과 골목에서 그리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저작권자(c)광주가톨릭평화방송,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작성일 : 2025-06-02 10:19:12     최종수정일 : 2025-06-02 10: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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