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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조계종 前총무원장 송월주 스님 영결식 엄수...김희중 대주교, ''스님의 가르침, 기억의 지킴이 될 것''

김선균 | 2021/07/29 12:30

(광주가톨릭평화방송) 김선균 기자 = 조계종 총무원장을 두 번 지내고 불교의 대사회 실천 운동에 힘썼던 송월주(宋月珠) 스님의 영결식과 다비식이 오늘(26일)오전 10시 전북 김제 금산사에서 종단장으로 봉행됐습니다.

이날 영결식에 참석한 한국천주교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대화위원회 위원장 겸 천주교광주대교구장인 김희중 대주교는 조사에서 "스님께서는 80년대 시대의 암흑기에 군부정권의 지지성명 요구를 거부하고 5.18민주화운동 희생자 추모행사를 봉행하는 등 고 김수환 추기경님, 고 강원용 목사님과 함께 민주화를 위한 대사회적 메시지와 실천행을 함께 하신 시대의 선지자셨다"고 평가했습니다.
 
26일 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낸 송월주 스님의 영결식이 봉행된 가운데 한국천주교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대화위원회 위원장 겸 천주교광주대교구장인 김희중 대주교는 조사를 통해 스님을 애도했다.

이어, "당시 타 종교인들간의 교류가 극히 드물었던 시대에 종교지도자협의회를 다른 종단 수장들과 주도하고 초대회장을 하시면서 종교간의 협력과 화합의 기반을 마련하셨다"며 "종교 박물관이라고도 할 수 있는 우리나라의 종교인들이 서로를 '이웃 종교'로 수용하면서 이웃 종교의 가치를 존중하려는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이는 종교간 화합과 협력을 위해 월주 스님께서 놓아주신 주춧돌 덕분"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김 대주교는 "스님의 자비선행은 우리나라라는 지역적 한계를 넘어 모든 사바 세계를 향했고, 시대의 선지자이고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 종교, 민족, 이념의 경계를 뛰어넘는 보편적 인류애를 실천해오신 분"이라고 회고했습니다.

이어, "국제개발구호 NGO 단체인 ‘지구촌 공생회’를 이끌어오면서 식수지원사업, 교육지원사업, 지역개발 등 가난하고 소외된 지구촌 이웃들을 위한 구호활동을 전개해오셨고, 이는 바로 모든 것은 연기되어있다는 불교적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시면서 지구촌 곳곳, 우리 사회 곳곳의 사람들과 나눔의 의미와 중요성을 사회적으로 보여주신 결과"라고 말했습니다.

김 대주교는 특히, 스님이 불교인권위원회 대표를 맡으면서 사회 곳곳에 인권이 유린당하는 상황을 개선하려는 노력에 대해서도 회고했습니다.
 
송월주 스님의 영결식에서 조사를 낭독하고 있는 김희중 대주교의 모습 

김 대주교는 "스님께서 설립하신 나눔의 집은 설립당시 위안부 문제가 많이 알려지지 않은 시기에 위안부 할머니들을 보듬는 안식처로서, 할머니들의 권익을 신장하고 사회적 관심과 대안을 만드는 일에 앞장서 오셨다"며 "이렇듯 스님께서 강조하시고 실천하신 ‘깨달음의 사회화’는 스님께서 이루고자 했던 삶의 철학이자 사회운동의 실천적 근간으로서 사람들과 나눔의 의미와 중요성을 사회적으로 보여주셨다"고 말했습니다.

끝으로 김 대주교는 "육안으로는 더 이상 큰 스님의 온화하신 모습을 뵐 수 없고 주옥같은 가르침을 더 이상 들을 수 없다는 안타깝지만 스님의 모습과 가르침에 대한 기억의 지킴이가 되어 큰 스님과 함께 영생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한편 송월주 스님은 법랍 68세, 세수 87세를 일기로 지난 22일 열반에 들었습니다.

송월주 스님은 1935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나 1954년 속리산 법주사에서 금오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으며, 1961년 26살에 금산사 주지가 됐는데 지금까지도 최연소 본사 주지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지난 22일 열반한 송월주 스님의 영정 모습

스님은 1966년 조계종 중앙종회의원으로 선출된 이후 총무원 교무부장, 총무부장, 중앙종회 의장 등을 지냈습니다. 

특히, 1980년 신군부가 정권을 장악할 때 총무원장을 맡아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군부정권의 지지성명요구를 거부하고 5·18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을 기리는 추모행사를 봉행했습니다. 

이에 신군부는 불교 개혁을 이유로 무장 군인들이 사찰에 난입하는 10·27 법난(法難)을 일으켰다가 당시 보안사 서빙고 분실로 강제 연행된 스님은 신군부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23일간 조사를 받은 뒤 원장직에서 물러났습니다. 

이후 1994년 종단 개혁 때 총무원장을 다시 맡았지만 종권 갈등의 한 축으로 비판받으며 1998년 총무원장 선거에서 3선 여부를 둘러싼 시비가 불거지자  후보직을 사퇴했습니다. 

이후 스님은 ‘깨달음의 사회화’를 표방하며 고 김수환 추기경, 강원용 목사 등과 함께 사회적 나눔과 종교인 화합 운동을 함께 펼쳤습니다.

활발한 대사회적인 활동에 펼친 스님은 국민훈장 무궁화장과 모란장을 수훈하고 만해대상, 대원상, 조계종 포교대상 등을 수상했습니다. 

스님은 ‘불법은 세간(世間·속세)에 있고 깨달음은 세간을 떠나 있지 않으니, 세간을 떠나 깨달음을 구하면 그것은 마치 토끼 뿔을 구함과 같다”는 법어를 즐겨 읊었습니다.

<저작권자(c)광주가톨릭평화방송,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작성일 : 2021-07-26 11:10:41     최종수정일 : 2021-07-29 12:3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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