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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R><순교자성월 연속보도-4>‘순교자성월에 떠나는 교구 순교성지’-영광순교자기념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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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가톨릭평화방송 | 0000/00/00 00:00

영광순교자기념성당 전경
ⓒ 광주가톨릭평화방송

 


ANN


(광주가톨릭평화방송) 이선영기자 = 광주가톨릭평화방송은 순교자성월을 맞아 순교자성월에 떠나는 교구 순교성지라는 주제로 연속보도를 준비했습니다.


 


오늘은 마지막 순서로 영광순교자기념성당을 이선영 기자가 소개합니다.


 


리포트


영광은 천주교광주대교구의 신앙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곳입니다.


 


한국천주교회는 1784년 이승훈이 베드로라는 이름으로 중국 북경에서 구베아 신부에게 세례를 받고 들어오면서 시작됐습니다.


 


전라도의 경우 한국천주교회 창설 직후에 전주의 유항검 아우구스티노와 진산의 윤지충 바오로, 무장의 최여겸 마티아가 천주교를 받아들이고 신앙공동체를 형성한 뒤 전라도 각지로 복음을 전파시켜 나갔습니다.


 


이 과정에서 영광에는 일찍부터 천주교가 전래됐으며 이화백, 오씨, 이우집, 최일안, 이종집, 남조이, 김득겸, 윤종백 등이 신앙생활을 하던 가운데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났습니다.


 


신유박해로 인해 최여겸으로부터 교리와 세례를 받은 월산리의 이화백과 복산 거주 양반 오씨는 영광에서, 월산리에 살던 유관검의 친사돈 이우집과 최여겸의 조카 최일안은 전주에서 각각 참수됐습니다.


 


유항검의 사돈 이종집과 남조이는 황해도 문화와 은율로 각각 귀양을 떠났고, 당대 조선천주교회의 최초의 여회장이었던 강완숙의 딸 홍순희는 영광으로 유배를 떠났습니다.


 


이후 병인박해 시기인 1867년에 영광 뜸밭 출신 김치명이 공주에서 교수형으로 치명되고, 영광 신어실에 거주했던 유문보는 1872년 나주에서 심한 고문의 후유증으로 옥사했습니다.

 



이화백과 오씨가 영광에서 참수된 순교터는 수차례의 고증과 학술회의를 통해 현재 도동리 석장승 남쪽 우시장 자리인 지금의 영광성당 정문 앞으로 추정했습니다.


 


천주교광주대교구는 영광 순교자들에 대한 행적과 기록을 발굴해 시복 청원을 할 계획입니다.


 


천주교광주대교구 교회사연구소 소장 최용감 신부의 말입니다.


<인서트-현재 영광지역에서 순교하신 두 분이 있습니다. 이화백과 복산 토반 오씨라고만 기록돼있어요. 토반이라고 하면 지역에서는 작은 양반이죠. 이 두 분이 신앙생활을 하다가 돌아가셨다고 기록은 돼있는데 말 그대로 딱 한 줄만 이름만 기록돼있을 뿐이지 이분들의 행적은 분명하게 드러나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혹시 이분들에 대한 행적이나 기록이 나오게 되면 그걸 가지고 시복청원을 할 수 있겠죠.>


 


천주교광주대교구는 1801년 신유박해시기에 영광에서 순교한 순교자들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지난 2010910일 순교자기념성당으로 지정했습니다.


 


2014628일 영광순교자기념성당을 신축해 축복식을 거행했고, 2017513일 영광성당 설립 80주년을 맞아 영광순교자기념관을 건립한 뒤 순교자들의 거룩한 순교정신을 기리고 있습니다.


 


특히 영광순교자기념관에는 한국 최초의 사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를 비롯한 여섯 명의 순교성인의 유해가 모셔져 있어 교회의 순교역사와 순교정신을 배우고 느낄 수 있습니다.


 


순교자성월을 맞아 신앙 선조들의 숨결이 남아있는 순교성지를 순례하며 일상 안에서 순교정신을 실현해야겠습니다.


 


cpbc뉴스 이선영입니다.


 


<저작권자(c)광주가톨릭평화방송,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작성일 : 2019-09-06 09:17:07     최종수정일 : 0000-00-0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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