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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8/9(금) <성지순례 가는 날> 국내성지-'여사울 성지'
작성자 광주가톨릭평화방송 조회 120 작성일 2019/08/06 11:54
첨부파일1 내포천주교_첫복음터_표지석_기도문.jpg(3184kb)

 

여사울성지 생가터 전경: 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소재


이번 주 금요일
<성지순례 가는 날> 코너에서,

우리가 순례할 곳은 대전교구 '여사울 성지' 입니다.

 

여사울성지 표지석

 

 

 

조명순 글라라(비아동본당) 자매와 4명의 자매님들

 

여사울성지 기도문

 

여사울성지 성당

 

여사울성지 성당 내부

 

여사울성지 순교자

여사울 성지에는 이존창 루도비코 곤자가 외에도

기억해야 할 성인 두 분과 복자 아홉분, 순교자 열두분이 있습니다.  

 

홍병주 베드로 와 홍영주 바오로

 

성 홍병주 베드로와 성 홍영주 바오로는 명문 양반의 후예로 서울에서 태어나
1801년 신유박해로 조부 홍낙민이 순교하자 부친을 따라 여사울로 이사를 와서 자랐습니다.
대대로 이어온 신앙을 이어받아 독실한 신앙생활을 했고,
형제가 함께 내포지방의 회장이 되어 교회 일에 헌신했습니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고 서양 신부들이 체포된 후 9월 말에 이르러
형제가 함께 서양 신부들의 은신처를 제공한 죄로 체포되었습니다
.

형인 홍병주 베드로는 1840131, 동생은 하루뒤인 21
당고개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하였습니다
. 각각 42세와 39세였습니다.

두 형제는
19845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하여 나란히 시성 되었습니다.

 

김광옥 안드레야

 

나란히 복자품에 오른 아버지와 아들도 있습니다.
김광옥 안드레아와 김희성 프란치스코 부자의 이야기인데요.

김광옥 안드레아는 천주를 알기 전에는 매우 포악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천주교 신자가 되고 나서는 어린아이와 같이 순한 사람이 되었다고 합니다.

예산 현감은 김광옥 안드레아가 체포되어 오자
즉시 공범자들을 대고 천주교 서적을 내놓으라고 명하였답니다.
그러나 그는 이를 완강히 거부하였고 1801825일 순교했습니다.

당시 그의 나이는 60세가량 이었다고 합니다.

 

김희성 프란치스코

 

김광옥 안드레아의 아들인 김희성 프란치스코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인 후 교리를 열심히 배우고 실천했는데요.

1801년 아버지가 순교하자 그의 열성은 더욱 깊어졌고
아버지를 따르겠다는 의지도 더욱 굳어졌다고 합니다,

안동 관아를 거쳐 대구로 이송된 김희성이 보여준 굳은 신앙심은
관원들조차 당황하게 만들었을 정도였다고 하는데요.

오랫동안 옥중생활을 한 김희성은 마침내 18161219일 대구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하게 되었는데 당시 그의 나이
51세였다고 합니다.

 

복녀_강완숙 골롬바

 

복녀 강완숙 골롬바입니다. 강완숙은 내포지방 양반의 서녀로 태어나서
홍필주의 아버지인 홍지영에게 후처로 시집을 갔습니다
.
천주교가 충청도지방까지 전해지자 교리를 배우기 시작하였고
박해의 위험을 느낀 남편이 헤어지기를 원하여 헤어지게 되었는데
,
시어머니와 전처의 아들 홍필주과 함께 서울로 이사하게 됩니다.
아들 홍필주 필립보 역시 복자품에 올라있는데요,
성인 홍병주와 홍영주의 삼촌뻘이 되는 분입니다.

강완숙 골롬바는 당시 체포령이 내려져 있던 주문모 신부를
자신의 집에 모시면서 대담하게 신부님를 모시고 나가 사목활동을 하고
치밀하게 숨겨 들어오는 것을
6년 동안이나 합니다.
또한, 주문모 신부로부터 여회장으로 임명받은 강완숙은 왕족에게 다가가서
그들을 영세 시키는가 하면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면서 복음을 전하고
,
불행한 여인들 미혼의 여인이나 홀로된 여인들을
자기 집에 모아서 함께 기도하면서 살았다고 합니다
.


 

여사울성지 십자가의 길

 


여사울성지 야외 제대

 

여사울성지 잔디광장 : 소규모 공연장도 있음

 

여사울성지 인근 공소

 

여사울성지 인근 공소 내부